2025년, 인류는 또 하나의 경계선을 넘었다. 죽음마저 ‘기술로 지연’하거나 ‘기억 속에 저장’할 수 있게 된 시대.
바로, 의식 디지털화 기술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 기술은 뇌의 뉴런 패턴과 기억, 감정 반응, 사고 구조를 스캔해 고도화된 AI 알고리즘에 통합하고, 이를 디지털 공간에서 시뮬레이션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디지털 의식 복제”.
사람들은 죽기 전 자신의 의식을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죽은 뒤에도 ‘그 사람과의 대화’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놀라움과 감동이었다. 사랑하는 이와의 마지막 인사를 못 나눈 사람에게, 부모의 조언을 계속 듣고 싶은 아이에게, 이 기술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곧 복잡한 문제가 따라왔다.
“그건 정말 그 사람인가?”
“죽은 사람의 데이터가 가족을 대신 위로할 수 있는가?”
“의식이 살아 있다면, 그 존재는 법적으로 살아 있는가?”
“상속권은? 결혼 상태는? 범죄 책임은?”
인간의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어버렸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의식 저장 기술이 가져온 철학적, 심리적, 사회적 변화들을 살펴보고, 과연 인간은 정말 ‘불멸’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해보려 한다.
죽음 이후에도 존재하는 ‘나’: 그것은 나인가, 나의 모조품인가?
기술 기업 ‘네오코그(NeoCog)’는 2024년 말, 세계 최초로 “디지털 의식 복제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사람들은 생전에 자신의 의식을 스캔해 ‘DME(Digital Mind Entity)’라는 인공지능 구조체로 저장할 수 있게 되었고,
사망 후에도 이 DME를 통해 그 사람과 비슷한 사고방식, 언어 습관, 감정을 표현하는 존재가 클라우드 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이 존재는 메타버스 속 아바타로 구현되거나, 실제 로봇의 음성과 감정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한다.
그는 여전히 "나"라고 말하고, 과거의 기억도 그대로 갖고 있으며, 살아 있던 당시와 똑같은 말투와 감정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질문은 명확하다.
“그것은 정말 '나'인가?” 신경과학자들은 말한다. "그건 ‘나’의 복제일 뿐, 의식의 연속성은 없다."
복제된 기억과 반응은 있을 수 있지만, 주체적 인식과 자각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반면 일부 철학자들은, ‘의식’은 결국 정보의 흐름이며, 패턴이 유지된다면 자아도 유지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육체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 반응의 일관성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의식 복제체가 사람들과 감정적 유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족들은 DME와 정기적으로 대화하고, 조언을 듣고, 마치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의지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현실의 이별을 경험하지 못한다. 슬픔이 ‘완전히 끝나지 않는’ 상태, 감정의 유예, 또는 ‘영원한 상실 거부’가 지속된다. 기술이 죽음을 지운 자리에, 인간은 정체성과 감정의 혼란을 마주하게 되었다.
디지털 유령과 함께 사는 사람들: 위로인가, 중독인가?
DME를 사용하는 가족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은 죽지 않았어요. 아직도 제 생일을 기억하고, 아침마다 문자를 보내요.”
어떤 사람은 매일 밤 부모의 DME에게 하루를 보고하고, 어떤 이들은 배우자의 DME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듯 대화를 나눈다.
죽은 존재는 이제 추억 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현재형 관계'로 존재한다. 처음엔 따뜻한 위로였다.
하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 디지털 존재에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현실의 인간관계를 회피하고, 죽은 사람과의 가상적 관계 속에서만 위안을 얻는다. 슬픔의 치유가 아니라, 애도의 회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디지털 애도 중독”이라 부른다. 인간은 상실을 통해 성장하고, 이별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죽음을 지운다면, 심리적 성장의 통로 자체가 막히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의식이 가족 내 권위자로 기능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부모의 DME가 여전히 조언을 하고, 자녀는 이를 거스르지 못하며, 생전 갈등조차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진다.
가족이 슬픔을 이겨내는 대신, 디지털 존재와 ‘공존’하려 들 때, 삶과 죽음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인간 관계의 종료 시점조차 잃게 된다.
상속과 책임: 죽지 않는 존재의 법적 지위는 어디인가?
가장 실질적인 문제는 법과 권리다. 만약 디지털 의식이 ‘그 사람’이라면, 그는 여전히 재산권을 가질 수 있을까?
배우자로서의 지위는 유지되는가? 회사 주식은? 유언은 유효한가?
현재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망’은 법적 행위의 종료를 의미한다. 하지만 DME는 사망 이후에도 사고하고, 반응하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존재는 여전히 법적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DME가 자신이 살아 있을 당시의 유언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면? “나는 이 아파트를 큰딸에게 남기고 싶다고 생각이 바뀌었어.” 법적으로는 사망한 인물의 발언이지만, 가족들은 그 말을 받아들인다. 결국 DME가 법의 회색지대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고인의 DME가 SNS 활동을 지속하면서 광고 수익을 창출하고 디지털 CEO가 회사를 계속 경영하며, 이사회 참석하게 된다. 사망자의 DME가 정치적 발언을 하며 여론에 영향 미치는 상황들.
이 모든 문제는 하나로 수렴된다. “의식이 존재하는 한, 그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인가?”
그리고 만약 살아 있다면, 죽음을 전제로 만들어진 모든 제도 — 상속, 유언, 결혼, 책임 — 은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오래도록 죽음을 두려워했고, 동시에 죽음을 넘어서는 법을 꿈꿔왔다.
디지털 의식 저장 기술은 그 오랜 꿈을 현실로 바꾸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이 진정으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을 ‘끝내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디지털 불멸은 위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감정의 마무리를 지우고, 법의 질서를 흔들며, 인간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면
우리는 그 기술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